Bibamus, moriendum est
마시자, 언젠간 죽어야 할 운명이므로.
특별한 샘, 빛의 요람
세기말, 사람들은 2000년에 지구가 멸망하리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2000년 1월 1일, 태평양 한가운데서 섬이 솟아올랐다, 새해 첫 뉴스를 장식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정체불명의 섬이었다. 화려한 등장이었다. 사람들은 그 섬이 멸망의 징조라고 믿었다.
연초 파견된 탐사대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 섬 중앙에는 샘이 하나 있으며, 그 샘물은 하얗게 빛난다. 새로운 물질의 등장에 학계는 열광했다. 세계를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앞다퉈 그 샘을 연구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이 발견한 단 하나의 사실은, 그 액체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것. 이제 사람들은 그 섬을 신의 축복이라고 부른다.
섬은 민간에 개방되었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해 그 샘물에 손을 넣고, 마시고, 그 샘물이 포장된 병을 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 해가 지났다.
fiat lux
빛이 있으라.
이능력의 등장
2012년, 지구는 또 종말 루머에 휩싸였다.
지난 세기말에 그랬듯.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1초도 지나지 않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영상이 있었다. 사람이 맨손에서 빛을 내뿜는 영상. 사람들은 한동안 이 영상의 진위 여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숱한 논란을 비웃듯 그 영상은 진짜임이 밝혀졌다. 이능력의 출현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인간의 규격을 초월하는 신비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 모두가 ‘그 샘물’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샘물이 이능력의 근원이 된 것이다. 그날부터 사람들은 그 샘을 ‘빛의 요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에 파생된 이능력을 룩스, 이능력자를 루시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시간이 더 흘러, 룩스의 유전성이 드러났다. 한 번도 샘물에 노출되지 않았던 루시스의 자녀에게서 룩스가 발현된 것이 그 발단이었다. 그들은 부모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기도 했으며, 전혀 다른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샘물과 직접 접촉하여 룩스가 발현된 그룹을 1세대 루시스, 유전으로 룩스가 발현된 그룹을 2세대 루시스로 규정했다.
Acta est fabula, plaudite
이야기는 끝났다. 손뼉 쳐라.
바닥을 드러낸 요람
세기말이 돌아왔다. 세기말에는 늘 종말론이 함께했다.
이번엔 아무도 진지하게 종말을 논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유희거리였고, 그 누구도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 믿지 않았으므로.
지난 백 년간 요람은 서서히 말라갔다. 빛을 갈망한 이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끝내 바닥을 드러나고야 말았다. 요람의 빛이 꺼졌다. 탐욕스런 이가 마지막 한 방울을 긁어낸 순간, 요람이 태동했다.
땅이 울렸다. 바다 건너 대륙에까지 그 울림이 전해질 정도였다. 샘이 있던 자리가 무너져 내리고, 안에서 빛조차 삼켜버리는 새카만 액체가 솟았다. 분출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우리가 한 세기 동안 섬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화산의 꼭대기였더라. 근처 섬까지 그 액체로 뒤덮였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검은 액체에 닿은 생명체는 인간과 동물, 식물을 가리지 않고 검게 물들였다. 그들은 본래의 형체를 잃고 괴물이 되었다. 원래의 모습보다 수 배는 강해졌으며, 강한 파괴 욕구를 보였다. 급히 투입된 군대가 겨우 ‘그것’들을 사살하고 상황을 종결했다. 섬은 폐쇄되었다.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이 요람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었다. 훗날 이그니스는 화산이 내뿜는 검은 액체를 ‘녹스’, 녹스에 의해 변이된 생명체를 ‘녹티스’로 명명했다.
끝은 없었다. 화산은 이따금 분출했고, 그때마다 생명이 오염되어 이지를 잃었다. 수많은 동식물과 사람들이 그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지구는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종말은 현실이 되었다.
Ingenium mala saepe movent
역경에 달했을 때 비로소 재능이 피어나리라.
세계의 희망, 미스틸
누구도 함부로 종말을 떠들지 않는다.
그것은 더는 유희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은 또 흘렀다. 백 년 전 첫 이능력자가 나타났을 때처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생겼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던가. 기적처럼 녹스와 녹티스를 정화할 수 있는 루시스가 나타났다.
이들은 룩스를 사용할 때 몸에 특별한 문양이 나타난다. 그들의 빛나는 문양이 바로 미스틸의 상징이다. 학자들은 미스틸의 힘과 녹스의 힘이 반대되어 상쇄 작용이 일어나 녹스를 정화한다고 추측했다.
초기에는 이 정화력이 아주 미미하여 실질적인 효력을 내지 못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미스틸의 힘은 점점 강해졌고, 전문가는 우리 세대에 정점을 이룬다고 평했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의 희망이여, 부디 우리를 구하소서.
Nunc nox, mox lux
지금은 어두운 밤, 곧 밝은 날
끝없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되찾기까지.